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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論峴洞)의 역사와 지명 유래

D DX관리자
2026.09.28 16:01 5 0

 

논현동(論峴洞)의 역사와 지명 유래

― 논고개에서 서울 강남의 중심지까지 ―


초록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은 오늘날 강남의 대표적인 주거·상업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의 도시적 모습만으로는 ‘논현(論峴)’이라는 지명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강남구의 공식 역사자료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기록을 종합하면, 논현동이라는 지명은 논밭의 벌판에 있던 ‘논고개’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된다. 특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논현동의 지명 유래를 ‘논밭의 벌판에 논고개가 있던 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강남 일대의 행정·생활환경을 살펴보면 현재의 논현동 일대에는 이미 ‘논고개리’라는 지명이 존재했으며, 1914년 지방제도 개편을 거쳐 리·동 체계가 정비되었다.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광주군 언주면 일대가 서울에 편입되었고, 논현리는 성동구 관할에 들어갔다. 1975년에는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리·신설되면서 논현동은 오늘날의 강남구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농촌의 모습을 유지하던 지역은 한남대교와 강남대로 건설, 토지구획정리사업, 인구 이동 및 상업시설의 형성 등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도시화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현동의 지명 유래와 행정구역 변천,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논현’이라는 지명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찰한다.


1. 서론

지명은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 아니다. 하나의 지명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지형, 주민들의 생활, 마을의 형성과 행정구역의 변화가 축적되어 있다. 특히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서울의 경우 과거의 자연환경과 생활공간이 건물과 도로로 대체되면서도 옛 지명이 그대로 남아 과거의 흔적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논현동 역시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현재의 논현동은 강남대로와 도산대로, 논현로, 학동로 등이 연결되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지역이며 주거시설과 상업시설, 업무시설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결과이며, 논현동 일대는 과거 한강 남쪽의 농촌지역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 강남구 일대가 조선시대부터 농업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지역이었으며, 1963년 서울에 편입되기 전까지도 농촌적 성격을 유지했다고 설명한다.[1] 따라서 논현동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도시경관에서 출발하기보다 이 지역에 존재했던 자연지명과 농촌공간, 그리고 서울 편입 이후 진행된 도시개발을 순차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논현동 지명의 유래

논현동의 공식 한자 표기는 ‘論峴洞’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논현’이라는 이름이 현대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지명이라는 사실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논현동의 지명 유래에 대해 명확하게 ‘논밭의 벌판에 논고개가 있던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1] 이는 논현이라는 지명이 논밭과 고개라는 당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현(峴)’은 고개를 뜻하는 한자로 사용되므로 논현이라는 명칭은 실제 지형적 요소인 고개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강남구 역사 부분에는 1759년 영조 35년의 호구장부에서 광주부 언주면의 12개 리 가운데 하나로 ‘논고개리’가 확인된다고 기록되어 있다.[1] 이는 오늘날 논현동의 지명과 연결되는 ‘논고개’라는 이름이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이미 행정·호구 관련 기록에 등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따라서 논현동의 지명 유래를 단순히 현대에 만들어진 명칭으로 볼 수 없으며,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역 지명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조선시대의 논고개리

논현동의 지명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강남지역의 행정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강남구 일대는 조선시대 광주부의 언주면과 대왕면에 해당하였다. 1759년 작성된 호구장부에서는 당시 언주면에 신원리, 역촌리, 양재리, 방하교리, 포전리, 무동도리, 청담리, 부로도리, 반곡리, 압구정리, 논고개리, 저자도리 등 12개 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1]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논고개리’라는 명칭이다. 오늘날의 ‘논현동’이라는 이름이 기록상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논고개’라는 지명이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강남지역은 현재와 같은 고밀도 도시지역이 아니었다. 한강변과 하천 주변의 평야 및 구릉지역을 이용한 농업이 주요 생활 기반이었으며, 현재의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역시 농촌적 성격이 강했다.[1] 따라서 논고개라는 지명 역시 당시 주민들이 실제 생활공간에서 인식하던 자연지형과 농경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4. ‘논현’이라는 한자 지명의 형성

지명의 한자 표기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명 표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우가 많다. 논현동의 경우 현재 한자로 ‘論峴洞’이라고 표기되지만, 여기서 ‘論’이라는 한자의 사전적 의미인 ‘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지명의 의미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지명에서는 고유어의 음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의미와 음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논현동의 공식적인 지명 유래에 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은 ‘논밭의 벌판에 논고개가 있던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는 것이며, ‘논의하다’라는 뜻의 ‘論’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1] 따라서 논현동의 명칭을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논의하던 고개’와 같은 별도의 설화적 해석으로 확대하기보다는, 현재 확인되는 공적 자료에 따라 논밭과 논고개라는 자연환경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안전하다.


5. 1914년 지방제도 개편과 논현리

1914년은 논현동의 행정구역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기다. 강남구청의 강남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1914년 일제는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했으며, 군과 면, 부락의 행정체계를 대규모로 재편하였다. 당시 현재의 강남구 지역 가운데 광주군에 속했던 언주면과 대왕면은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기존 행정구역의 통합과 개편이 이루어졌다.[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을 묶어 리·동 체제를 갖추었다고 설명한다.[1] 이 시기를 통해 전통적인 자연마을과 생활권 중심의 지명은 근대적인 행정구역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다. 다만 ‘논현리’라는 명칭이 정확히 어떤 자연부락들의 통합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때는 자료별 기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 확인되는 공신력 있는 자료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 후기 호구장부에 ‘논고개리’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1963년 서울 편입 당시 행정구역 목록에 ‘논현리’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1] 따라서 1914년을 논현동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최초 발생 시점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전통적인 자연지명이 근대 행정구역 체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논현리라는 지명이 정착해 가는 시기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6. 서울 편입 이전의 논현동

광복 이후에도 논현동을 포함한 현재의 강남지역은 서울 도심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45년 광복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전까지 현재 강남구에 해당하는 지역을 ‘고요한 농촌지대’로 설명하고 있다.[1] 당시 농업은 지역 주민들의 중요한 생업이었으며, 강남지역의 농업 형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쌀농사 중심에서 채소재배 중심으로 변화하였다.[1] 오늘날 논현동에서 이러한 농촌의 흔적을 쉽게 찾기는 어렵지만, 논현이라는 지명 자체가 과거의 농촌경관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의 ‘논고개리’라는 기록과 현대 논현동의 지명 유래를 함께 살펴보면 이 지역의 명칭이 도시개발 이전의 생활환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7. 1963년 서울특별시 편입

논현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정적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1963년이다.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 대폭 확대되면서 광주군 언주면 전역과 대왕면 일부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었다. 당시 편입된 지역은 성동구 관할에 들어갔으며, 언주출장소가 설치되어 해당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행정구역 자료에는 이때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내에 논현리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 성동구 기록관 역시 1963년 서울시 구역 확장에 따라 광주군 언주면 등이 서울에 편입되었고 성동구에 언주출장소 등이 설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3] 따라서 논현동의 현대 행정구역 역사를 설명할 때 1963년을 ‘강남구가 된 시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정확하게는 1963년 논현리 일대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관할이 되었고, 이후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강남구에 속하게 된 것이다.


8. 1975년 강남구의 신설

1963년 서울에 편입된 이후에도 논현동 일대가 곧바로 현재와 같은 강남의 중심지가 된 것은 아니다. 서울의 행정구역과 도시개발이 확대되면서 한강 이남 지역에 대한 도시계획과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강남구청의 강남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1973년에는 영동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5년 영동출장소가 폐지되면서 강남구가 신설되었다.[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1975년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리·신설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1]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역시 1975년 강남구가 성동구에서 독립하여 본격적인 행정구역으로 등장했으며,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었다고 설명한다.[4] 따라서 논현동의 현재 소속인 강남구라는 행정적 정체성은 1975년부터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논현동은 단순한 서울의 외곽 농촌지역이 아니라 빠르게 개발되는 강남지역의 일부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9. 강남 개발과 논현동의 도시화

논현동의 공간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된 강남 개발이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1970년대 강남 개발 과정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토지구획정리사업, 학교와 주요 시설의 이전, 지하철과 도로 등 도시 기반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4] 논현동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서울역사편찬원이 2025년 실시한 ‘강남개발과 IT신화의 공간들, 논현과 역삼동’ 답사 자료에 따르면 논현동 일대는 강남 개발 초기부터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형성되었으며, 논현동 가구거리는 1980년대 초부터 아파트 단지와 인구 유입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5] 또한 영동시장은 1973년 조성된 강남의 오래된 재래시장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5] 이러한 변화는 과거의 농촌지역이 점차 주거·상업지역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 논현동과 농촌경관의 소멸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논현동에서 과거의 논밭과 자연마을은 점차 사라졌다. 도로가 건설되고 주택과 상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농촌경관은 도시경관으로 대체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의 강남구 일대가 과거 농촌지역이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도시화되었다고 설명한다.[1] 논현동 역시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논밭과 고개는 현재의 도시구조 속에서 거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지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논현’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사라진 자연환경을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흔적이 되었다. 도시의 건물은 재건축과 개발에 따라 계속 변화하지만 지명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1. 논현동의 행정구역 변화와 학동

논현동의 현대 행정구역을 살펴볼 때 학동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63년 서울 편입 당시 논현리와 함께 학동이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에 포함되었으며,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1982년 종전의 학동이 논현동에 편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1] 이는 현재의 논현동이라는 공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일한 범위를 유지해 온 것이 아니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그 영역이 변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날의 논현동을 과거의 논현리와 완전히 동일한 공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지명은 이어졌지만 실제 행정구역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역사적 지명을 연구할 때 법정동과 행정동, 자연마을과 과거의 리 단위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2. 논현동 가구거리와 새로운 도시공간

오늘날 논현동을 대표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는 가구거리다. 서울역사편찬원의 2025년 강남지역 답사 자료에 따르면 논현동 가구거리는 1980년대 초부터 형성되었으며, 강남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가구상가가 밀집하기 시작하였다.[5] 주변에는 조명과 장식재, 내장재 등 건축자재 관련 상점도 함께 형성되었다.[5] 이는 논현동이 단순한 주거지역을 넘어 특정 산업과 상업 기능을 가진 도시공간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과거 농업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지역이 주거시설과 상업시설, 전문 유통시설이 밀집한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처럼 논현동의 현재 모습은 단순히 행정구역의 변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서울의 인구분산과 강남개발, 교통망 확충, 주택공급, 상업시설 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3. 논현이라는 지명이 가진 역사적 의미

논현동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의 도시공간과 지명의 의미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논현동에는 과거처럼 넓은 논밭이 존재하지 않으며, 논고개 역시 도시개발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논현’이라는 지명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지명은 조선 후기 기록에서 확인되는 ‘논고개리’와 연결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 논현동의 지명이 논밭의 벌판에 있던 논고개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1] 따라서 논현동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도시환경을 설명하는 이름이라기보다 도시화 이전의 자연환경을 기억하게 하는 역사적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논밭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지명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14. 논현동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종합적 고찰

논현동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자연환경에서 출발하여 농촌마을, 행정구역, 서울의 도시공간으로 변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서는 광주부 언주면에 ‘논고개리’가 확인되며, 이는 현재 논현동 지명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1] 1914년에는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자연마을을 근대적인 리·동 체계로 재편하는 행정적 변화가 진행되었다.[1][2] 1963년에는 광주군 언주면 전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관할이 되었고, 논현리 역시 서울의 행정구역 안으로 들어왔다.[1][2][3] 1975년에는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논현동은 강남구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후 강남 개발과 함께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1][2][4] 1980년대에는 가구거리와 같은 전문 상업공간이 형성되면서 논현동은 주거지역을 넘어 상업·업무 기능을 가진 도시공간으로 발전하였다.[5] 결국 오늘날의 논현동은 오랜 자연지명과 근대 행정구역 개편, 서울 편입, 강남 개발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15. 결론

논현동이라는 지명은 오늘날의 강남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다. 그 뿌리는 조선 후기의 ‘논고개리’라는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재의 논현동이라는 지명이 논밭의 벌판에 있던 논고개에서 유래했다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1] 이는 논현이라는 이름이 당시 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농업적 생활공간을 반영하여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이후 1914년 지방제도 개편을 통해 자연마을과 행정구역이 근대적인 체계로 재편되었고, 1963년에는 광주군 언주면 일대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관할에 들어갔다.[1][2][3] 그리고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논현동은 현재의 강남구에 속하게 되었다.[1][2] 이후 강남 개발과 교통망 확충, 주택 및 상업시설의 증가로 논현동의 공간적 성격은 농촌에서 도시로 완전히 변화하였다.[4][5]

오늘날 논현동에서 과거의 논밭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논고개 역시 현대의 도시경관 속에서 그 원래 모습을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명은 남아 있다. ‘논현’이라는 두 글자는 과거 이곳에 논밭이 있었고 그 사이에 고개가 존재했으며, 그 주변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마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따라서 논현동은 단순히 강남구에 속한 하나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자연지명에서 시작하여 농촌마을을 거쳐 서울의 도시공간으로 변화한 강남의 도시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명은 도시보다 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건물은 철거되고 도로는 바뀌며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지만, 한 번 정착된 지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과거의 기억을 보존한다. 논현동 역시 그러하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논현’이라는 이름에는 조선 후기의 논고개리, 광주군 언주면, 1963년 서울 편입, 1975년 강남구 신설, 그리고 1970~1980년대 강남 개발이라는 긴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논현동은 논이 사라진 뒤에도 논이라는 기억을 이름으로 남긴 동네이며, 고개가 도시 속에 묻힌 뒤에도 그 고개의 흔적을 지명으로 간직한 공간이다.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특별시 강남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광주부 언주면의 ‘논고개리’, 1914년 지방제도 개편, 1963년 서울 편입, 1975년 강남구 신설, 논현동의 지명 유래 및 행정구역 변천을 확인하는 데 사용하였다.

[2] 강남구청, 「강남역사관」, 강남구청 공식 홈페이지.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1963년 서울 편입, 1973년 영동출장소 설치, 1975년 강남구 신설 등 강남지역의 행정구역 변천을 확인하였다.

[3] 성동구 기록관, 「지도로 읽는 성동의 변화」, 성동구청. 1963년 서울시 구역 확장에 따른 광주군 언주면의 서울 편입 및 성동구 언주출장소 설치, 1975년 강남구 분구 관련 행정구역 자료를 확인하였다.

[4]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역사아카이브」 및 강남 개발 관련 자료. 1970년대 강남개발, 도시 기반시설 확충, 강남구 신설과 도시공간의 변화에 관한 자료를 참고하였다.

[5] 서울역사편찬원, 「2025년 10월 서울역사문화답사 ― 강남개발과 IT신화의 공간들, 논현과 역삼동」. 논현동 가구거리, 영동시장, 강남 개발 초기의 주거·상업공간 형성과 도시화 과정에 관한 자료를 참고하였다.


자료의 성격에 대한 주의

본 논문에서는 논현동의 지명 유래를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던 고개’ 등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설화로 확대하지 않았다. 공식 백과사전 자료가 명시하는 ‘논밭의 벌판에 있던 논고개’라는 설명과 조선 후기 호구장부에 확인되는 ‘논고개리’라는 기록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또한 1963년 서울 편입과 1975년 강남구 신설을 구분하여 기술함으로써 ‘1963년에 강남구가 생겼다’는 식의 행정구역상 오류를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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